푸른 바다 같은 자연 빛깔…‘나주 천연염색 마을’ 매력에 빠지다
입력 : 2024-03-17 14:00
수정 : 2024-03-17 21:08
[주제가 있는 마을] (4) 전남 나주 ‘명하쪽빛마을’ 
쪽물 수백·수천번 저어 진한 색감 배게 
체험휴양마을 지정…작년 7000명 찾아 
스카프 물들이기·저녁식사 진행 호평 
벚꽃 축제 등 다채로운 콘텐츠 개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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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빛은 주로 푸른색을 말하지만 전통 방식으로 낸 쪽빛은 더욱 깊고 짙은 빛깔을 낸다. 사진은 명하쪽빛마을에서 5대째 쪽 염색을 이어온 윤대중 쪽 염색 전승교육사(왼쪽)와 최경자 명하쪽빛마을 부위원장(오른쪽).

전남 나주시 문평면 북동리에 있는 명하쪽빛마을엔 짙푸른 스카프가 나부낀다. 나주역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이곳은 70여명 주민, 39가구가 모여 사는 고즈넉한 시골마을이다. 국가무형문화재 고 윤병윤 염색장 생가가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조선시대부터 명맥을 이어온 명하쪽빛마을은 2011년 나주시로부터 농촌체험휴양마을로 지정됐다. 지난해 체험을 위해 찾아온 방문객만 7000명에 달한다. 나주는 쪽과 뽕나무가 자라기 좋은 풍토를 가져 염색문화가 발달했는데, 그 가운데 명하쪽빛마을이 선보이는 쪽 염색은 더 특별하다. 자연염료를 쓰는 천연염색과는 다르게 복잡한 발효와 산화 환원 과정을 거쳐야만 쪽빛 옷감을 얻을 수 있어서다. 이 마을은 나주 천연염색박물관과 더불어 쪽 염색의 중요성을 알리는 첨병 역할을 한다. 윤 염색장을 이어 전승교육사로 활동하는 아들 윤대중씨(61)는 쪽 염색에 매력이 많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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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 염색제품.

“깊은 쪽빛을 내려면 염료를 만들 때 수소이온농도(pH)와 온습도를 매번 조절해줘야 해 직접 몸으로 배우는 수밖에 없습니다. 화학약품으로 하는 염색으로는 이런 빛깔을 도저히 낼 수 없으니 가치를 매기기 어렵죠.”

윤 전승교육사의 손가락엔 검푸른 물이 배 있다. 쪽 염색이 얼마나 어렵고 정성이 필요한지 잘 보여준다. 알맞은 색소를 뽑아내려면 수백·수천번 반복해서 쪽물을 저어야 한다. 염색을 반복하면 빛깔이 짙어지지만 옷감은 상하기 때문에 적은 손상으로 색을 잘 배게 하는 것이 핵심 기술이다. 이 마을에서는 1만9834㎡(6000평) 규모 밭에 쪽 모종 11만포기를 심고 약 1000㎏ 쪽 앙금을 얻는 모든 과정을 수작업으로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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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주민과 체험객이 함께 쪽 염색 체험장에서 천을 널고 있다.

일반인도 마을에 오면 쪽 염색을 배울 수 있다. 염색 체험은 화요일과 목요일을 제외한 평일과 주말에 진행된다. 염색 체험시설에 가면 녹색·청색·갈색·적색으로 스카프를 물들일 수 있다. 쪽 염료가 뭉친 ‘쪽 앙금’에 옷감을 담그면 처음에는 노란빛을 띠지만 공기와 닿을수록 연두색·녹색·청색으로 변해 체험객들은 마법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여름이면 갓 딴 생쪽잎으로 염색하는 귀한 체험도 가능하다.

윤 전승교육사는 “전통 방식으로 하는 쪽 염색은 그냥 푸른색이 아닌 빠져들 것 같이 짙은 보라색을 띤다”면서 “이런 빛깔에 매료돼 해외에서도 쪽 염색을 체험하러 마을을 방문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명하쪽빛마을은 염색 덕분에 활기가 돌고 있단다. 체험 프로그램으로 저녁식사도 신청할 수 있다. 저녁식사는 39가구 중 24가구가 협동조합원이 돼 조를 짜 돌아가며 준비한다. 큰 농사를 짓지 못하는 어르신도 텃밭에서 키운 대파를 가져와 즐겁게 참여하는 마을 공동 사업이다. 마을 어르신이 키운 오골계와 영산포에서 잡은 해산물로 끓인 오골계해신탕, 홍어·돼지고기·묵은지가 합쳐진 삼합은 별미 중의 별미다. 마을에서 45년 넘게 살아온 조합원 황영희씨(65)는 “조미료를 쓰지 않고 마을에서 나는 재료로 음식을 만들다보니 방문객들도 굉장히 좋아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마을이 쪽 염색 체험 등을 통해 올린 매출은 2억3000만원가량으로 마을 살림에도 톡톡히 한몫하고 있다.

마을은 계속해서 좋은 콘텐츠를 내놓기 위해 변신하고 있다. 지난해 4월엔 시와 협력해 마을 곳곳에 피는 벚꽃을 주제로 축제를 열었다. 잔디밭에 펼쳐진 텐트에서 하는 캠핑 행사나 사생대회를 열어 쪽 염색문화 홍보에도 나섰다. 벚꽃 축제엔 300명 이상이 방문해 마을에 보탬이 됐다. 다른 체험마을과 연계도 활발하다. 2022년 명하쪽빛마을을 포함한 9곳 체험마을은 ‘나주힐링네트워크협의체’를 꾸려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명하쪽빛마을은 연꽃을 주제로 하는 화지홍련마을과 공동으로 ‘연꽃과 함께 하늘 감상 투어’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최경자 명하쪽빛마을 부위원장은 “주민 모두가 전통 쪽 염색의 가치와 중요성을 알리고 이어가는 데 똘똘 뭉쳤다”며 “앞으로는 마을주민뿐만 아니라 체험을 위해 찾아오는 방문객, 마을 발전에 관심이 있는 관계인구와 함께 우리나라 쪽 염색의 명성을 세계에 알리는 데도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나주=정성환 기자 sss@nongmin.com 사진=강재훈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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